안녕하세요, 게티이미지코리아입니다.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 얼마 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그의 14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전시회가 열리기도 해 미술계의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죠. 그만큼 피카소는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한 번 쯤은 들어봤을법한 유명하고도 친숙한 미술가 중 한 명입니다.
혹자는 '왜 피카소가 미술계의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피카소는 누구보다 전통 미술을 깊게 파고들었지만 결국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길을 창시했기에 '혁신의 미술가'로서 거장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20세기 현대 미술을 상징하는 예술가인 파블로 피카소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천재 피카소>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던 피카소, 뛰어난 관찰력과 명석한 두뇌로 성인이 되기 이전부터 많은 명작을 남기기도 했죠. 피카소가 16세 나이에는 재학 중이었던 국립 왕실미술학교 교사들이 피카소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하여 학교를 떠나기도 한 천재 중의 천재입니다. 실제로 피카소는 학교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거의 매일 프라도 미술관을 찾아 엘 그레코 등의 작품 앞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나더클라스'였던 피카소, 20대 때는 모국인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서 유명 화가들과 교류하며 피카소 본인 만의 예술 세계를 개척하기 시작합니다.
<아비뇽의 처녀들, 모든 현대 미술의 출발점>
그 중에서도 '아비뇽의 처녀'들은 피카소가 1907년, 26세 때 제작한 그림으로 '현대 예술의 출발점'으로 일컬어지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당시 피카소가 머물렀던 파리를 비롯한 유럽에는 매춘이 기승을 부렸고 이로 인해 피카소의 많은 동료 예술가들이 매독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합니다. 동료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피카소는 쾌락의 결과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보여지길 원했고 그것이 '아비뇽의 처녀들'이란 작품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작품의 의미 뿐만 아니라 언뜻 보기에도 전통적인 그림과는 확연히 다른 기하학적 표현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작품인데요, 이전 화가들이 구사해오던 그림의 구성이나 원근법과 단절을 선언한 '아비뇽의 처녀'들은 이 시기 다른 예술 장르에도 큰 영감을 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도자기 빚는 피카소?>
최근 삼성가가 故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중 피카소 도자기 112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다고 밝혀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는데요, 상당히 많은 피카소의 작품들을 삼성가에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하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화가로 알려진 피카소가 도자기까지 만들었다는 사실 또한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 분들이 많았습니다.
피카소는 1946년 남프랑스 코트다쥐르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도자기 전시회를 방문하게 되는데요, 이곳에서 알게 된 마두라 공방의 수잔, 조르주 라미에 부부에게 도자기 만드는 법을 배워 600종 400점 이상의 세라믹을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피카소는 흙을 만질 때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을 남기기도 하는 등 도예에 금방 심취하게 되었고 올빼미, 물고기 모양, 얼굴 모양, 그리스 신화의 인물을 형상화 한 도자기까지 다채로운 주제들로 많은 도예작품들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피카소의 여성 편력>
예술에서는 이견 없는 천재로 인정 받는 피카소지만 그의 사생활은 심한 여성편력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피카소와 관계를 가졌던 여성들은 밝혀진 사람들만 7명이 있었는데요, 46세에 17세 여성을 만났고 이후에는 26살 연하의 여성을 만나기도 했으며 이러한 여성 편력은 80세에 34세 여성과 결혼을 하며 정점을 찍기도 했습니다. 비극적이게도 피카소의 연인들 7명 중 2명은 자살하고 두 명은 정신병자가 될 정도로 여성들을 정신적으로 학대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피카소의 문란한 사생활은 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공산주의자 피카소>
피카소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는 바로 피카소가 프랑스 공산당원이라는 사실입니다. 1944년 62세의 나이로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한 피카소는 '나는 공산주의자이고 나의 그림은 공산주의 그림이다.'라고 말하면서 그 뒤로도 공산당을 옹호하는 듯한 그림을 많이 남기게 됩니다. 특히 이번 피카소 전시회를 통해 유명해진 "Massacre in Korea(한국전쟁에서의 학살)"은 어떤 사건을 다뤘는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잔혹함을 알리기 위해 그렸다는 설이 있을 정도였다고 하죠. 이 작품을 포함한 피카소 대부분의 작품은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군사독재시절에는 금기시되기도 했었습니다.